3. 10만어의 저술가 한비(韓非)  

한비(韓非)는 한나라의 공자이다. 형명학과 법술학을 좋아하였는데, 이러한 학문은 황제 노자의 학문에 근본을 두었다. 한비는 말을 더듬어 말을 잘하지 못하였으나 글을 잘 지었으며, 이사와 함께 순경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는데, 이사는 스스로 한비만 못하다고 인정하였다.

한비는 한나라가 점점 쇠약해져 가는 것을 보고 여러 번 한왕에게 서면으로 간했으나 한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한비는 나라를 다스리면서 법을 닦고 밝히며, 강력한 힘으로 신하를 부려서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성하게 하며, 인재를 구하여 현명한 자에게 임무를 맡기는 일이야 말로 군주가 해야 할 일인데, 작금의 군주는 이러한 일에는 힘쓰지 아니하고, 도리어 경박하고 방탕한 무리를 실제로 공이 있는 사람들의 윗자리에 두어서 유능한 자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을 개탄하였다. 유학자들은 글재주로 나라의 법을 어지럽히며, 협객은 무력으로 금법을 어긴다고 생각하였다. 시절이 평화로울 때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총애를 받고, 나라가 위급할 때는 갑옷을 입은 군인들이 중용되는데, 오늘날 양성하고 있는 자들은 평화 시에 쓰일 만한 인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쟁에 쓰일 만한 인재도 아닌, 쓸모없는 부류들이라고 보았다. 청렴하고 강직한 사람이 사악하고 비뚤어진 신하들 때문에 능력을 펴지 못함을 슬퍼하였다.

지나간 일들 중에서 득실의 변화를 살펴보아 고분(孤憤)’, ‘오두(五蠹)’, ‘내외저(內外儲)’, ‘설림(說林)’, ‘설난(說難)’10여만 어에 달하는 장문의 글을 지었다. 한비는 설난에서 유세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설득의 어려움이란, 내가 아는 것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어려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변론으로 내 뜻을 밝히기 어려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여 말하기 어려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서 내 말이 그 사람의 마음에 합당하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은 높은 명성을 추구하는데, 두터운 이익으로 설득하려 들면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보고 비천하게 대우받아 버림받는다. 상대방은 두터운 이익을 추구하는데, 높은 명성을 가지고 그를 설득하려 들면 무심한 사람이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라고 여겨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제로는 두터운 이익을 추구하면서 겉으로는 명성이 높기를 바라는 사람은 높은 명성으로 그를 설득하면 겉으로는 설득자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를 소원하게 여기며, 만약 두터운 이익으로 그를 설득하면 속으로는 설득자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겉으로는 배척하는 척하니, 이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이 비밀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전에 누설되면 실패한다. 설득자가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감추고자 하는 일에 말이 미칠 수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상대방은 경계심을 가지고 대하게 되어 설득자가 위험하다. 귀한 신분에 있는 사람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잘못이 있는데, 설득자가 명확한 말과 치밀한 논의를 진행하다 귀인이 저지른 잘못을 추론하기에 이르면 귀인은 경계심을 가지게 되어 설득자가 위험하다. 군주의 은택이 아직 설득자에게 깊이 미치지도 않았는데, 설득자가 일의 사태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면, 말한 대로 행해져서 공이 있어도 덕은 없게 되며, 말한 대로 행해지지 않고 실패하면 의심을 받게 되어 설득자의 신상이 위험하게 된다. 귀한 신분에 있는 사람이 계책을 내어서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삼으려 하는데, 설득자가 그 계책을 알게 되면 경계심을 가지게 되어 설득자가 위험하다. 하지 않으려 하는 일을 설득자가 억지로 하게 권하고, 이미 일이 진행되어 그칠 수 없게 된 일을 제지하게 권하면 상대방이 반감을 갖게 되어 설득자가 위태롭다.

군주와 대담하면서 고위직에 있는 사람을 논하면 이간질한다고 생각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논하면 권력을 팔아먹는다고 생각하고, 군주가 사랑하는 사람을 논하면 그 사람의 힘을 빌리려 한다고 생각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논하면 자기를 시험한다고 생각한다.

설득에 힘써야 할 점은 상대방이 공경하는 것은 더 좋게 수식하고 상대방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점은 덮어주어서 마음을 얻는 데 있다. 상대방이 스스로 계책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계책이 실패할 경우를 들어서 궁지로 몰아넣어서는 안 되고, 상대방이 스스로 용기가 있어서 결단을 내린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의 견해를 반대해서 화나게 만들어서는 안 되며, 상대방은 스스로 힘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통 사람의 힘밖에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설득자가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인정하여 설득자의 생각을 물리치지 아니하며, 말하는 것을 배격하지 않을 정도로 신임을 얻은 뒤에라야 유세자가 자신의 변론과 지식을 펼칠 수 있다. 이렇게 친밀하여 의심받지 않는 사이가 되어도, 아는 것을 다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 은택이 미쳐서 심원한 계책을 세워도 의심하지 않고, 서로 논쟁하여도 죄를 받지 않으며, 이해를 명백하게 밝혀 드리면 군주가 그 공을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러, 서로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설득은 성공한다.

송나라에 부자가 살았는데, 비가 내려 담장이 무너졌다. 그 집안의 아들이

담장을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이다.”

라고 하였고, 이웃집에 사는 늙은이도 그렇게 말했다. 날이 저물자 과연 도둑이 들어 많은 재물을 잃었다. 그러자 부자가 생각하기를 아들은 예측력이 뛰어난데, 이웃집 늙은이는 의심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옛날 정나라 무공이 호()나라를 쳐서 그 땅을 차지하고 싶은데, 호나라 군주가 정나라에 대한 경계심을 잔뜩 가지고 있어서 일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무공은 이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호나라 공주에게 장가보냈다. 얼마 후 정무공은 여러 신하들에게

이제 과인이 병력을 일으키고 싶은데 어느 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좋겠소?”

라고 물었다. 신하들이 모두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데, 관기사가 호를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정무공은 화를 내면서

호는 형제의 나라인데, 그대가 호를 치자고 하는 것은 무슨 일이냐?”

라고 호통을 치면서 관기사를 죽였다. 정무공이 이러한 질문을 신하들에게 했을 때 호나라를 쳐야 좋은 줄을 어찌 다른 신하들인들 몰랐겠는가? 다만 군주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잘 몰라서 대답을 망설였을 뿐인데, 관기사는 재빨리 대답하였다가 죽음을 자초하였다. 호나라 군주가 이 소식을 듣고는 정나라는 자기 나라와 사돈의 인연을 맺고 나서부터 친밀한 관계가 되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나라의 내습에 대한 방비를 소홀히 하였다. 호나라가 방심하고 있음을 안 정나라는 호나라를 습격하여 나라를 빼앗았다.

이 두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 중 부잣집의 이웃에 사는 노인은 마땅함을 알고 있다가 의심을 받았고, 정나라의 관기사는 마땅함을 알고 있어서 죽음을 당하였다. 이 두 가지 사례를 보면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알고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옛날 미자하(彌子瑕)가 위()나라 군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위나라 법에 군주의 수레를 훔쳐 타는 자는 월형의 벌을 받았다. 월형이란 발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다. 미자의 어머니가 병이 들어서 궁실에 있는 미자에게 누가 밤에 가서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마음이 급한 미자는 군주의 수레를 몰래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군주가 이 소식을 듣고 그를 칭찬하면서

효성스럽구나, 어머니가 유고하니 월형도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라고 하였다. 군주와 함께 과수원을 노니는데, 미자가 복숭아를 먹다가 맛이 달아서 먹던 복숭아를 군주에게 바쳤다. 미자가 바치는 복숭아를 받아든 군주는

그대는 참으로 과인을 사랑하는구나, 자신의 입을 잊고 과인을 생각하다니.”

라고 하면서 미자의 행위를 칭찬하였다. 미자의 미색이 쇠해지자 군주의 사랑이 식기 시작하였고, 군주의 사랑이 식어지자 이제는 미움을 받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군주는

이 사람은 일찍이 과인의 수레를 훔쳐 탄 적이 있고, 먹다가 남은 복숭아를 과인에 준 발칙한 사람이야.”

라고 하였다.

미자의 행동은 처음과 변함이 없는데, 전에는 현명하다고 여긴 것이 뒤에는 죄가 되니, 군주가 미자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따라서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아는 것이 많을수록 더욱 친숙해지고, 군주가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마땅히 해야 할 일도 때로는 죄가 될 수 있으니, 간하고 설득하는 자는 군주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살핀 뒤에라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용은 길들여서 친해지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목 아래에 지름이 한 자가 되는 역린(逆鱗)이 있는데,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군주도 역린이 있는데, 설득하는 자가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한 것이다.

이상의 글은 한비가 설난에서 유세의 어려움이 무엇인가를 말한 내용이다.

누가 한비의 저서를 전하여 진왕 정이 고분’, ‘오고의 글을 보고

,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보고 함께 노닐 수 있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구나!”

라고 하니, 어전에 있던 이사가

이것은 한비의 저서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사의 말을 들은 진왕 정은 한나라에 있는 한비를 만나고 싶은 생각에서 한나라를 급히 공격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진왕 정은 바로 진시황인데, 아직 중국을 통일하기 전이므로 편의상 이렇게 지칭한다. 한왕 안은 한비를 등용하지 않았으나, 일이 급하게 되자 비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진왕은 기쁜 마음으로 그를 만나 보았으나 마음을 터놓고 심중의 깊은 내용을 이야기해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왕의 의중을 눈치 챈 이사는 왕에게 가서 한비를 헐뜯어서

한비는 한나라의 공자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제후들을 병탄하려 하시는데, 비는 끝내 한나라를 위하여 일을 꾀하지 진나라를 위해서 도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정입니다. 지금 왕께서 그를 등용하지는 않으시고 오랫동안 억류하여 두었다가 돌려보내시면, 이것은 스스로 근심거리를 남기시는 것이니 허물을 찾아내어 법에 따라 처벌하시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진왕은 이사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겨 하급 관리를 시켜서 비를 다스려 죄를 묻게 하였다. 비가 죄를 뒤집어쓰고 처벌을 받게 되자, 이사는 비에게 사람을 보내 약을 주면서 자살하게 하였다. 한비는 직접 왕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개진해 보고 싶었으나 왕을 만날 수가 없었다. 진왕은 뒤에 한비를 벌주게 한 일을 후회하고 사람을 보내서 사면하게 하였으나 비는 이미 죽고 없었다. 한비 자신은 설난을 지었지만 자신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슬픈 일이다. 한비가 죽은 뒤 한나라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진나라에 멸망당하였다.